지난 1월, 서울의료원에서 근무하던 한 간호사가 자택에서 약물 과다 투여로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간호사는 유서에 ‘나 발견하면 병원 가지 말아줘’라는 말과 함께 ‘병원 사람들 조문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意思)를 밝혔다. 이에 사망의 배경에 간호사 ‘태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태움은 끊임없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간호사들을 사지에 몰고 있는 태움은 무엇이며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움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에게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가하는 정신적 · 육체적 가혹행위를 의미한다.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파생됐으며, 간호사 이직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초기의 태움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업무의 특성상 실수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엄격히 가르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태움은 교육을 빙자한 폭력으로 변질됐다.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살벌한 분위기, 임신 순번제* 등 태움으로 인한 간호사 인권 침해는 의료 서비스 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임신순번제 : 간호사들이 같은 시기에 임신해 인력 공백 및 업무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병동 내에서 순서를 정해 임신과 출산을 하는 관행.

프리셉터있는 한 태움은 끝나지 않는다.

  1년 전, 서울 아산병원의 박선욱 간호사가 선배 간호사의 괴롭힘을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휴대폰 메모장에는 업무에 대한 압박감, 프리셉터** 선생님의 눈초리,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한 증상의 심화, 하루 3, 4시간의 잠과 매번 거르게 되는 끼니로 인해 점점 회복되지 않았다는 글이 있었다. 태움 피해 간호사들은 프리셉터제도가 유지되는 한 태움을 없앨 수 없다고 말한다.

  프리셉터는 신입 간호사의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신입 간호사로 근무했던 익명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에게 찍히면 사실상 간호사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실제로 프리셉터의 괴롭힘은 찍힌 간호사가 그만둘 때까지 집요하게 이뤄진다. 다른 간호사들이 보는 앞에서 의료차트나 약품을 집어 던지고 욕을 하거나 인격 모독을 하는 등 지속적인 태움을 가한다. 심지어 프리셉터의 교육이 끝나고 독립을 해도 환자 생명과 직결된 일이라는 이유로 태움을 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프리셉터 : 교육을 담당하는 선배 간호사를 지칭하는 단어로 경력 4~6년 차 간호사가 대부분이다.

***생살여탈권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리와 주고 빼앗을 수 있는 권리.

태움 뒤에 숨겨진 진실

  현직 간호사들은 태움의 원인이 개인이 아닌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과도한 업무량과 인계시스템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다.

  2013년부터 시범 운영되던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간호사들의 업무량이 증가했다. 기존 간호 업무량도 상당한데 여기에 간병 업무까지 더해지니 간호사들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때문에 간호사들이 제때 밥을 못 먹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고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것도,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힘들어졌다.

  간호사로 근무 중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널스맘은 인계시스템으로 인한 업무 과중과 압박감이 태움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입원 환자를 직접 마주하는 병동간호사들은 3교대 근무를 하고 한 사람당 15~20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하루 8시간 동안 밤낮없이 10명이 넘는 환자를 혼자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다음에 일할 간호사를 위해 실수 없이 최대한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 인계 과정에서 전 간호사가 일을 끝내지 못했거나, 실수했을 때 다음으로 일하는 간호사가 일과 실수를 모두 수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 간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행한 서비스로 보호자나 개인 간병인 없이

전문 교육을 받은 간호 인력이 기본 간호부터 전문 간호까지 전적으로 제공하는 것.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며 좋은 간호사가 되겠다 다짐했을 많은 간호사. 그러나 그들은 좋은 간호사이기를 포기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하고 있다. 매번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고, 태움은 끝나지 않았다. 백의의 천사가 악마가 되지 않도록 태움 근절을 위한 구체적인 근본책이 하루빨리 마련됐으면 한다.

 

/김현지 기자 hyunjizi21@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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