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봄을 망치는 것

이진편집부장
이진 편집부장

 

벚꽃의 절정이 다가왔다. 거리는 벚꽃 천지이며, 분홍빛으로 물든 거리는 한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낮에는 꽃 무더기가 바람에 흔들리며 봄을 알리고 밤에는 꽃등을 환히 밝혀 봄밤을 더 밝히고 있다. 이러한 봄 거리를 나서면 낙화를 준비하지 않은 꽃그늘 아래로 여러 알록달록한 풍경을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을 망치는 흉물이 거리 곳곳 존재한다. 봄의 아름다움과 상반되고 덕지덕지 나붙어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욕설과 비방의 낯부끄러운 언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바로 현수막들이다. 정치 현수막들은 전국에 걸쳐 길거리 공해의 주범으로 뽑힌다. 당연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가리지 않고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아도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혐오만 부추기는 현수막들은 봄을 망치고 있다.

정당의 정치 현수막들은 하나같이 상대를 비방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정권 망국적 친일야합’, 진보당은 일본에 바칠 다음 선물리스트라는 글귀와 함께 독도 그림이 그려져 있는 현수막을 내걸었으며, 국민의힘의 경우 이를 반박하듯 민주당을 상징하는 푸른색 배경의 나라 망치는 거짓선동이라는 글귀와 함께 다양한 현수막을 내걸었다. 여의도에서 정치의 무관심과 혐오를 멈추자며 외친 정치권이 혐오를 거리로 끌고 온 모순적인 상황이다. 근거도 없이 선동이니 매국노니 욕만 적어둔 현수막은 웬만한 광고 현수막들보다 꼴 보기 싫다. 다른 현수막들은 도심 미관을 해친다며 수거하고, 정당이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정치 현수막을 수거하지 못하는 건 내로남불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현수막 정치는 정치권 그들만의 특권이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정당 현수막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 광고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함에 따라 문제가 발생했다. 정당이 별도 허가나 신고 없이도 정치적 현안이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현수막을 내걸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며, 최대 15일간만 게시할 수 있다는 법적 기준 외에는 개수나 위치 제한도 피해간다. 형평성이란 눈을 씻고 찾아도 없으며, 현수막 제작 비용도 국고보조금이나 정치후원금에서 나가니 이런 후안무치가 없다. 당초 목적과는 달리 다른 정당이나 정권을 비방하는 자극적인 현수막이 난무하면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문구에 대한 혐오감이나 통행에 불편함을 가중시킨다는 걸 왜 모를까.

현수막 공격의 화살은 고스란히 정치혐오로 되돌아오는 사실을 모르는 곳은 정치권뿐이다. 여의도식 정치문법이 활개 치는 현수막은 한국정치의 후진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한다. 정치담론을 두 당이 장악한 듯 거대 양당의 혐오 현수막의 개수는 다른 군소정당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더 문제는 똑같은 문구의 현수막이 국회의원 혹은 당협위원장의 사진과 이름만 바뀐 채 도시 곳곳에 내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현수막에서도 중앙정치에 볼모로 잡힌 지방정치의 현주소가 잘 드러나는 것이다. 정치 현수막에 지역 현안이 등장하는 것은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지역을 대변하는 정치인보다는 중앙정치를 잘 대변할 막대기 정치인이 있는 듯하다.

중앙정치에 볼모로 잡힌 건 지역정치뿐만 아니라 여의도 정가에서도 존재한다. ‘자기정치한다는 말이 잘못하는 정치인을 비판하는 수사로 사용된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소신에 찬 발언과 행동으로 정치적 야망을 펼치려 하면 사방팔방에서 주저앉히려는 세력과 맞서야 한다. 즉 권력자의 뜻과 당의 방침에 어긋나면 가차 없이 조리돌림을 당한다.

봄과 함께 찾아온 꽃이 지고나면 다시금 정치 공해에 노출될까 우려스럽다. 지역정치, 자기정치는 없고 서울에서, 여의도에서 공장처럼 찍어 낸 현수막이 국회의원, 당협위원장의 이름과 사진만 달리 한 채 전국 곳곳에 나부낄 걸 생각하니 진절머리가 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일 180일 전인 8월부터는 유권자의 1인 현수막 게시도 가능해져 현수막 난장판은 극을 달릴 것이다.

이런 혐오와 프레임, 거짓과 선동이 담긴 현수막이 거리로 나오는 것이 과연 옳은지 정치권은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 정치권에서의 개싸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시시비비를 따질 거면 여의도 그들만의 무대에서 하길 바란다. 아름다운 봄, 혐오의 정치가 망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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