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필요하다

39기 최윤정(편집국장)

당신은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누가, 어떤 용도로 당신을 만들었는지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겠으나 당신 존재의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약자를 보호하고 나쁜 사람을 혼내주기 위함이다. 많은 역사 속에서 당신을 잘 구슬려 악용하는 이도 있었고, 반대로 당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갖다 바친 이들도 있었다. 당신은 세상에 너무나도 큰 영향을 미치기에 미우나 고우나 우리에게 필요하다.

필자가 말하는 당신은 슈퍼맨이나 아이언맨같은 영화 속 영웅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이다. 둘은 사회 질서 유지’, ‘정의 실현을 진리로 삼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법은 영웅처럼 약한 사람들을 항상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법이 악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는 사례가 사회 전반에 차고 넘친다. 분명 어렸을 때 본 동화책 속 세상에선 나쁜 사람이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행복해지면서 끝났는데. 참 이상한 세상이다.

이 칼럼을 읽고 있는 이도 선뜻 현재 한국의 법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뉴스에서든, 실생활에서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속 뉴스를 보며 필자가 자주 하는 말들이 있다. ‘ 처벌이 너무 가벼운 거 아니야?’가 대표적이다. 이 생각은 결코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판결 관련 뉴스 기사 아래 댓글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솜방망이 처벌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국민에게 법이란 그리 믿음직한 영웅으로 인식되지 못한다. 물론 법이 제 역할을 하는 사례도 존재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례를 근거로 들 수 있겠으나 지금까지 필자의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조두순 사건이다. 200812,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한 교회 안의 화장실에서 한 50대 남성이 8세 여아를 강간 폭행했다는 뉴스 보도가 잇따랐다. 그 당시 나영이 사건이라고 불리며 국민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소중한 가족의 일상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끔찍한 범행에 대해 국민 모두가 무거운 처벌을 예상했다. 당연히 법은 피해자의 편이어야 했으니까. 그러나 판결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피고 조두순을 징역 12년형에 처한다.’ 머리가 띵했다. 다시 한번 눈을 비비며 뉴스 자막을 봤다. ‘12년형이라는 대문짝만한 숫자는 원망스럽게도 너무 선명했다. 판결의 근거는 이랬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대사. ‘술을 마셔 기억이 안납니다 판사님.’ 말도 안 되는 핑계라며 헛웃음을 쳤는데, 진짜 법이 가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에서 저 말을 정상참작 한 것이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판결이었다. 미디어에선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등의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왔으나 그것도 잠시뿐 이 비극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202010월 현재, 조두순의 출소는 1개월 채 남았다. 이에 국민은 조두순에 대해 보호수용법*을 촉구하는 일명 조두순 격리법제정을 요청했다. 해당 청원은 청원 시작 일주일 만에 7만 명이 넘게 동의하며 큰 지지를 받았다. 이 법의 필요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보호 수용법은 과거 끊임없이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인권 침해를 이유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두순 출소에 대한 국민적 공포감이 극에 달하는 현재 다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윤화섭 안산시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성범죄자 관련 '보호수용법' 제정을 긴급 요청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이 법이 제정되어도 조두순에게 직접 적용할 수 없다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이 주를 이룬다. 또한, 해당 법안을 범죄자에게 소급해 적용하는 규정은 없기에 해당 법안의 실효성은 희박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대한민국의 범죄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다른 나라인 미국이 성범죄자에 대해 100년 형을 내리는 것에 비해 퇴행적이다.

*보호수용법: 상습적으로 성폭력범죄 (3회 이상) 또는 살인범죄 (2회 이상)를 저지르거나 아동을 상대로 성폭력범죄를 저질러 중상해를 입게 하는 등 위험성이 매우 높은 사람들을 형기 종료 후에 일정 기간 별도 시설에 수용하는 법.

 

계속되는 논란에 정부는 안산시에서 무도 실무관을 투입해 24시간 순찰에 나서기로 했다. 조두순 출소 이전 안산의 안전함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 라며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국민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심지어 피해자 가족은 안심할 수 없다며 현재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긴 상태다.

현재 성범죄 재범률이 60%가 넘는 우리나라에서 재범률이 높은 범죄자의 재범 가능성을 줄 일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조두순의 경우 감옥 생활 중 피해자에 대해 보복 의지를 밝혔으며 교화될 확률이 현저하게 적기 때문에 앞서 정부가 제시한 격리와 병행할 다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는 이를 발판 삼아 재범 예방에 대한 정교한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

내일 눈을 떴을 때 아주 옛날 일처럼 기억이 안 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눈을 뜨면 그대로에요. ’ 조두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소원속 극 중 나영이 역을 맡은 소원이의 대사 중 한 부분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줬다면 그에 대한 처벌은 엄격하게 이행되어야 하는 당연하고도 순행적인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클리셰가 대한민국의 법에게도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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